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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자 은하연합 ()
작성일 2010-10-24 (일) 22:39
ㆍ조회: 2399  
김추자론(4)ㅡ5백만 년만에 한번 나올 가수
 
 
 
 
에필로그를 대신하여 김추자님(이하존칭 생략)의 노래를 들어오면서 느꼈던 단상들을
적어볼까합니다.
 
첫째로
5백만년 만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가수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무슨 장난하나구요?
처음에는 오백 년만에 한 번 나오는 가수로
하려다가, 나올까 말까한 가수로 바꾸었지요. 놀라시는 분 있나요. 그뿐 아닙니다.
오백년 지나고 다시 나타나는 그 가수는 (환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환생한 가수 김추자라는 말이지요. 그렇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백만년 만에 한번 나올 가수라고 해도 크게 거짓될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김추자라는 가수가 나오기 위해서는 수십 가지 요소들이 충족되어져야하고 그것들이
서로 맞물려 조화를 이루는 그런 기적 아닌 기적이 일어나야 된다는 것이지요.
 

그 간에 어떤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쓴다고 쓰다보면 그 주제에 걸맞는 가수인가 싶다가도
어느새 또다른 색채가 발견되어 딱히 뭐라고 언어로 정립할 실체가 잡히지 않을 만큼 다양한 색깔을
지닌 가수였습니다. 아까전 내마음은 짚시라는 곡을 듣고 왔는데 소절소절을 굽이치는
강이라고 치자면 굽이굽이마다 목소리가 죄다 딴 사람이더군요. 노래 한 곡에도 수많은 사람이
나뉘어부르기라도 한 듯이 다양한 색깔의 목소리가 나타났습니다. 허스키해서 물리는 듯 하면
또 금새 맑고 앳띤 소리가 나타나고 말이죠. 경박한 소리가 나는 듯하는가 하면 또 금새 귀족적인
목소리가 들려오고 말입니다. 관능적인 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금새 한 없이 청랑한 소리가 들려오고
말이죠. 토속적인가 싶으면 어느새 금새 도회지 귀공녀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간에 적지않은 곡을 들어오면서 전체적으로 느낀 느낌을 한 단어로 말해본다면
가수 김추자는 국민 막내여동생 가수였다는 것입니다.
초창기 데뷔곡에서부터 그러한 뉘앙스가 뚜렸하게 나타나기 시작해서 그 이후 수많은 음반 속에서도
집안에서 가장 재롱을 많이 피우는 막내여동생처럼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딱 그러한 분위기로 말이죠.
마치 국민들이 오빠나 언니와 같이 가족인 것처럼 말이죠.
전체적인 가수로서의 마인드는 어떤지 몰라도 노래를 할 때만은 노래가 들려올 때는 
선입견인지 몰라도 그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유년의 습관은 쉽게 버려지지 않지요.
요 근래 들어서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성년기는
대부분 유년기의 주석서에 지나지 않는다는군요. 유년기의 기쁨 칭찬 상처 좌절 이런 것들이 성년기를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지요. 깊은 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다가 말입니다.
 
 
그러한 활달한 정서가 일관되게 배어있었습니다. 차츰 이십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
수많은 콘서트로 노래를 많이 불러서 그런 것인지 목소리가 원숙해진 반면
많이 지친 기색이 느껴졌고 비음이 많아졌고 두성이 위로 쭉 맑게 퍼져나가지 못하고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콘서트라서 녹음실에서보다는 소리가 좋게 들리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가수 김추자가 한국무대에 출현한 기간 대부분 이제 갓 현대적인 국가를 세우고
그야말로 국제적으로 치자면 촌놈, 촌닭 국가인 한국 관객들은
그 누구보다도 가요로서 대중문화적인 호사를 누렸다는 것이죠.
그것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호화찬란하게 향유했다는 것입니다.
 
더 심하게 말하면 서양 선진국인들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런 무식하고 천박하기까지 한,
개화가 덜 된 이런 공화국 종족들이 과연 이런 고급 문화를 누릴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대는 어두웠지만 그 어떤 나라, 불란서나 영국 그리고 미국의 브로드웨이를 능가하는
대중문화를 김추자를 통해서 향유했다는 것입니다.

김추자라는 가수의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왜 이런 가수가 나오지 않으냐구요.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은 아무 나라에나 이런 가수를 선사하지 않습니다.
제 종족들끼리는 싸워도 그래도 남의 나라 이유없이 욕심부려 침범한 적이 없는
민족에게나 주어지는 호사겠지요. 무의식은 그나마 다른 나라보다 맑은 말이죠.
 
지구에서 노래 좋아하고 잘 부르는 민족으로 치자면 이탈리아와 한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반도 민족이 노래를 좋아한다는데, 양쪽이 바다가 있어서 습기로 목이 컬컬해서 그런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노래를 잘한다고 하더군요. 지구에서도 으뜸가는 나라에서
그녀 말고 가수 없다라는 결론이 내려졌다면 두 말 할 것도 없는 것이지요.
 
 
이 세상이 나타난 이래 노래를 부른 이는 가수 김추자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 나머지 모든 가수들이 부른 소리는 노래가 아니었던 것이지요.
뭔가가 부족했던 거지요. 지금 조차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노래 아닌 노래를 부르고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이 말을 이해하시지 못하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물론 이 또한
극단적인 성향의 제 의견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공감하시겠지요.
 
그리고
다음카페에서 가수 김추자의 컴백 무대영상을 보았습니다. 이수만씨와 김청씨가 사회를 보고
있더군요. 동영상으로 노래 부르시는 모습 말고 이야기를 하시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 목소리가 그 간에 수십 장의 앨범 속에 노래로 녹음이 되었던 그 목소리가 맞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아이처럼 앳띤 목소리, 커피한잔에 나오는 무시무시하게 위협적인 목소리,
남성성과 여성성이 적절하게 섞인 신비로운 목소리의 주인공인지말입니다.
목소리도 목소리지만 어찌 저리 새색시처럼 다소곳하고 조용조용한
자태와 말투로 그 많은 노래를 부르셨을까가 불가사의했습니다.
 
그 발랄하고 당당하고 씩씩한 국민막내여동생을 저처럼 의기소침하고 지친기색이 역력하게
만든 그 세월이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 말입니다.
 
김추자 이후의  노래들은 가수 김추자가 불렀던 노래들의 주석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까요.
그것도 알량하고 어설픈 주석서들 말입니다.
 베토벤이 위대하고 참신한 작품을 쓴 작곡가가 된 것은 선배 작곡가들의 음악사를 거의 전부
섭렵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배웠던 것이지요.

위대하고 독창적인 철학자 또한 전 역사의 선배 철학자들을 비판하고 새로운 자기 색의 철학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옛것을 죄다 섭렵해야하고 그들의 언어로서 대적을 해야한다고 합니다.
일단은 그들에게서 배워야한다는 것이지요.
온고이지신이라는 말이 있듯이 말이죠.
그러나 요즘 대중음악계 또한 그러한 정신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문학 또한 그러한 자세가 필요한데 그러한 자세를 가진 작가는 점점 줄어들어 사양길로 접어들었다는군요.
아쉬울 따름입니다.
 

 가수 김추자를,
작은 소리로 불러도 크게 들릴 수 있는 가수 그리고 크게 들렸으면서도 내 귓가에 작게 남아 가슴 깊게
박히는 가수, 라고 가수 정경화씨는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그야말로 역설의 미학이라고 할까요.
 
브람스라는 클래식 작곡가가 있었습니다. 40살 먹을 때까지 교향곡을 한 곡도 못썼답니다. 선배 작곡가
베토벤 모짜르트 이런 분들은 대부분 이십 대때 이미 많은 업적을 달성했는데 말입니다. 바로 앞 세대에 베토벤이란
존재가 있어서 브람스는 웬만한 작품은 발표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베토벤과 비교해서 성이 차지 않은 곡은
말입니다. 40이 넘어서야 발표를 해서 겨우 교향곡 네개를 작곡했지요.
 
그러나 그 긴 세월은 허사가 아니었습니다. 브람스는 기묘한 분위기의 곡을 작곡했지요.
화려하면서도 빛나지 않은 곡 빛나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곡을 쓰려고 말입니다.
그래서 베토벤 곡들을 들어보면 굉장히 스케일이 크고 웅장하며 화려합니다. 비유하자면 저 나이아가라 폭포와
같은 곡이지요.
그러나 브람스 곡은 도시에 있는 커다란 분수와 같다고나 할까요. 한강에 있는 엄청 큰 분수 말입니다.
베토벤 곡처럼 그렇게 웅장하고 스케일이 크지 않은 듯 보이지만 일상의 분수처럼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가까이 두어도 말입니다. 베토벤 곡은 여행지에서나 들을 수 있는 곡 같지만  브람스곡은 일상 어디에서나
자주자주 들어도 물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웅장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때론 시기적절하게 웅장하지요.
 
브람스 자신이 피아노협주곡을 작곡할 당시 무진 애를 썼다고 합니다. 화려하면서도 빛나지 않으며 빛나면서도
화려하지 않는 그런 느낌을 주는 그런 곡을 생산하도록 말이죠.
언제들어도 물리지 않는 언제 보아도 친숙한 막사발 같은 그런 기교없는 기교 말이지요.
 
가수 김추자의 노래속에서도 그러한 역설이 들어 있다고 할까요. 어떤 장르의 곡이든 일단 듣기시작하면
한 곡을 굉장히 많이 반복해서 들어보는 습관이
있는 저로서는 김추자가 다양한 음색으로 생산해낸 노래들을 들어보면 쉽게 질리지가 않았습니다.
화려하면서도 빛나지 않은 역설 말이지요. 크게 들리면서도 작게 들리는 역설 말이지요. 소박한 듯 하면서도
빛이 나는 막사발처럼 말이지요.
 의도를 했든지 아니면 천부적으로 그러한 음악을 생산할 능력이 있어서 그러했든 말이지요.
 
그러니까 프랑스에는 샹송이 있고 이태리에는 칸쵸네가 있고 포르투칼에는 파두가 있고
한국에는 김추자가 있습니다. 있었습니다가 아닙니다. 있습니다.
 
아직도 한국의 가요노래는 그녀의 노래를 따라오고 있지 못합니다. 그녀는 40년의 우회로를 직통로를 통해 온 것이지요.
그 이상의 세월이 될지도 모릅니다. 김추자는 그녀의 이름만이 아닙니다. 하나의 장르인 것입니다.
너무도 다채로워서 장르가 아닌 장르인 것이죠. 그녀는 거의 50년 세월을 바로 왔지만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습니다. 호주머니 속의 송곳은 언제가 되었든지 뚫고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절 문 앞에 가면 인상이 험악해보이는 사천왕상이 있습니다. 발로 잡귀를 누르고 있지요.
가수 김추자는 그 깊고 기운 찬 목소리로
식민지 잡귀 육이오 잡귀 군사독재 잡귀를 눌러 쫒아내기 위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한반도 민족의 무의식속에 자리한 그 망령들을 위협하여 겁을 주고 쫒아내기 위해 나타난 것입니다.
 
그녀의 소리에는 기운이 넘칩니다. 목소리가 크다고 다 기운이 넘치는 것은 아닙니다. 디지털 용량이 적은
음악파일은 소리가 크다해도 소리의 이가 빠진 듯해서 듣는 이를 짜증나게 합니다. 어떤 이는 구역질을 한다고도
합니다. 예민해서 말이죠. 이처럼 소리가 크다고 해서 목소리에 기운이 넘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녀의 목소리가 작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크면서도 기운이 넘칩니다.
그리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기운을 전해줍니다.
그녀의 다채롭고 독특한 창법 만큼이나 그녀의 소리에 담긴 결 곱고 힘 찬 기운은
듣는 이로 하여간 무의식적인 힘을 줍니다.
 
그녀의 춤은  노래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그리하여 격렬한 춤속에서도 뛰어난 가창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정한 고요함은 움직임 속의 고요함일 때도 있는 것이지요.
만일 당사자의 외부가 시끄러우면 가만히 있는 것이 고요함은 아닐 것입니다.
그 소리의 물결과 하나되어 파도 타기를 하는 것이 오히려 더 고요한 상태라 할 수 있는 것이죠.
고요함 속의 움직임 움직임 속의 고요함이 진정한 움직임 진정한 고요함인 것이죠.
소리의 파도에 매몰되어 물을 먹지 말고 파도의 흐름을 타는 것입니다. 그녀의 춤은 그러한 흐름을 타는
하나의 요소인 것이지요. 움직임 속에서 고요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고요함 속에서는 몰입의 에너지, 생명력이 더 잘 나올 것입니다. 현란한 춤 속에서 뛰어난 가창력이 감쇠되지
않는 것은 그러한 이유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러한 주장은 특히 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아래 유튜브 주소에 나오는 춤을 참조하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18tTPWKwrj8&feature=related
 
(춤의 제목에 쿤달리니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이는 요가하시는 분들의 전문적인 용어로 소수의 여러가지 주장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주류의 주장은 골반과 허리 사이에 있는 차크라의 즉 생명소에 잠들어 있던 에너지가 눈을
뜨고 일어나 상승하는 것입니다. 주로 한순간에 굉장한 에너지가 솟아나는 현상을 겪는 분도 계시지만 또 어떤
분들은 아주 서서히 상승해서 분할되기도 한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골반과 더불어 허리를 흔드는 것은 그러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그 사람의 깊은 무의식의 형상에 따라 종족마다 다른 형태와 양상을 띄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에너지를 억지로 깨우면 부작용을 양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무의식에는 밝은 면 뿐만 아니라
어둡고 혼란스런 역사가 내재되어 있기때문이지요. 부러 깨우고자 한다면 전문가의 도움과 관리가 있어야 안전하다고
할 수 있지요.
기독교 종교인들은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고 명명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수도생활을 하다보면 이러한 영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낸다고 합니다. 에너지가 깨어나서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와 대면하는 것이죠.
꼭 이런 과정이
인생을 살면서도 마찬가지죠.
때로 특히 어려울 때가 있죠.)

 

침묵의 노래도 또한 노래입니다.
지금도 생존해 계시는
알렉시스 바이젠베르크라는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있습니다.
건반에 있어서 어떤 어려운 기술도 터득해낸 독보적인 존재이지요.
한창 주가를 올리던 소싯적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10년동안 잠적해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 기억으로는 이십대였을 것입니다. 그의 말인즉슨, 예술가에게는
그러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고요한 시간을 통해서 자신의 예술적인 철학을 정립하고 깊이를 갖추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개성을 건설하는 작업 말입니다. 10년이란 세월 동안 말입니다.
 

 
침묵의 연주도 연주이고 침묵의 노래도 또한 노래인 것이죠.
 
음악에 뛰어난 사람은 왜 음악에 뛰어날까요. 그러한 사람들은 언젠가. 불교신자라면 전생에 생물학적인 마인드가 있는 분이라면 유전자 속에 유교신자라면 조상의 역사 속에서
아주 고요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진정으로 세상과 별리 되어 깊고 깊은 고요 속에 있어본 이가 아니면
그런 유전자를 타고 난 이가 아니면 그렇게 음악에 소리에 뛰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소리에 민감하고 소리를 다루기 위해서는 그만큼 고요해지는 연습을 해야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깊고 깊은 고요의 세월을 보낸 적이 있는 영혼이 소리에도 민감한 것이지요.
 
가수 김추자의 전생이든 아니면 그녀의 유전자 속이든 그것도 아니면 그녀의 조상님의 내력에서든
그처럼 깊고 깊은 고요의 시절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한 고요함의 전력만이 그런 역사 만이 이처럼 다채롭게 소리를 잘 우러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처럼
침묵이나 고요는 소리와 동떨어진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그녀는 지금 침묵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죠. 삶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죠.
그 노래 또한 어떤 노래 만큼이나 아름다운 그녀의 노래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노래 또한 소리로 드러내는 노래와 동떨어진 것이 아닌 것이지요.
 
그러한 침묵이 깊어지면 언젠가 자연스레 무대의 노래를 당신은 또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지금이라도
당신이 마음을 연다면 그녀가 부르는 삶의 노래, 마음의 노래 또한 들으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쓰고 있슴
   
이름아이콘 이동준
2010-10-26 00:18
오백년만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가수... 어쩜 이렇게도 제 맘에 쏙 드는 얘기를 쓰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과연 500년만으로 가능할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전 세계를 통하여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바브라스테레이잔드, 올리비아뉴튼존, 존바에즈, 나나무스끄리, 린다론스태트.. 그 누구도..다만 크리스탈 게일에 와서는 조금 그렇지만 그녀는 판이라고 해야 그렇게 많지 않으므로.... 흑인의 경우는 판은 많지만 상당히 차이가 나므로... 흑인의 가창력이야 알아주기 때문에.. 아무튼 제가 생각하는 상당한 부분의 공감가는 글이 은하연합님과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은하연합님께서 제가 정리한 김추자님의 엘피를 들으실 수 있다면 금상첨화의 글이 나올 것으로 믿습니다. 더욱 좋은 글이 나오려면 김추자님의 단계를 3단계로 나누거나, 같은 곡의 다른 버전을 듣고 같은 노래를 다르게 부른 - 꼭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예를 들어 님은 먼 곳에의 경우에는 데뷰곡과 힛트곡집의 경우에 각각 다르며, 80년대에도 각각 달리 부른 노래가 있어서 제일 차이가 나는 곡입니다 - 그러한 점을 분석하신다면 훨씬 좋은 리뷰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저는 또 다른 경우 리메이크의 경우를 다른 가수와 비교하는 것, 예를 들어 펄시스터즈와 임희숙, 박경희 등과 비교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이름아이콘 정장영
2010-10-28 23:11
회원캐릭터
공감합니다....
   
이름아이콘 은하연합
2010-10-31 23:54
조 위에 마음은 집시라는 곡의 예를 들었는데  대전부르스나 목포의 눈물이 그예에 더 걸맞겠군요.
소절 소절 다른 사람이 부르시는 것 같은 다양한 음색 말이죠.
정장영선생님 덧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름아이콘 이춘우
2010-12-08 17:47
이런 된장! 전부 ..
   
이름아이콘 백동열
2010-12-12 01:23
동감입니다 타고난 천재임이 틀림없다 생각합니다
   
이름아이콘 박헌재
2011-01-01 09:29
천재라는데 1표!
   
이름아이콘 김경숙
2011-02-04 11:44
저도 동감이에여..^^*
   
이름아이콘 이춘우
2011-02-14 08:50
아버님은 김추자가 미친 년이라 하며 경멸을 하셨다. 그러나 아버님의 탁월한 훈육에도 불구하고 70년대, 80년대의 상황은 당신의 바람되로 되는 바가 없었죠.. 그러기에 지축을 한곳 뚫고 나와 영혼의 부름이 있어 아버님과 모시는 제가 대화를 하게 됩니다.
   
이름아이콘 이춘우
2011-02-14 09:04
요즈음 그런 생각과 관건이라는 문제부분을 생각합니다. 천재 김추자는 70년-80년대의 왜곡된 진실의 산물로서 그럴 자연일까? 아니면 다른 부분이라는 애써 외면한 그런 부분도 있지는 않을까? 있다면 무었을 해야할까?!나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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