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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작성자 은하연합 ()
작성일 2010-10-03 (일) 19:10
ㆍ조회: 1682  
김추자론(1)ㅡ민족샤먼으로서의 김추자
 
 
1. 역사적 배경
 
 
고래로 샤먼이라 하면 그 지역사회 구성원의 무의식을 전담해왔다.
인간의 영혼이 자연의 갈대로서 존재하는데서 오는 존재의 무의식적 불안이나
슬픔을 처리하는 역할을 해왔음이 틀림이 없다.
 
신화적이고 주술적인 시대에는 신녀나 제사장이 그역할을 했고
그런 시대를 벗어나 근대화의 시대에
들어서는 종교적인 수장뿐 아니라 시인이나 소설가 등의
문자샤먼이(특히 시대적인 감각이 투철하고 뛰어난)
그 역할을 담당해왔다.
 
김추자님(이하 존칭생략)의 가무샤먼으로서 우리 반도 민족에게 기여한 기여도는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전무후무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녀를 사랑한 대중들도 그리고 가무샤먼으로서의 당사자인 김추자 자신조차도
잘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으리라. 이러한 현상은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쌍방의 무의식적인
작용이니 만큼 그럴 수 밖에 없으리라.
 
 지난 세기는 반도 민족의 수난시대였다. 일제식민지통치를 36년간이나 받아왔고
게다가 곧이어 설상가상으로 사변이 일어나서 민족끼리 상잔의 나날을 보내야했다.
그런 후에도 국가재건과 민주화에 이르기 전까지 독재군사정권의 횡포를 겪어내야했다.
 그야말로 배고프고 어디에 기댈대도 없는 암울한 시대의 연속이었다.

김추자가 출현한 것은 그 무의식적인 피로감이 절정기에 달한 1969년도이다.
그간에 우리 반도민족의 무의식은 지칠 때로 지쳐 있었음에
틀림없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식민통치와 처참한 동족전쟁 그리고 어두운 군사독재시대의 그림자는 언제나
마음속 깊은 곳에 침울한 그늘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먹고 살기 바쁜 까닭에 그러한
무의식적인 아픔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표면의식적으로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리의 심층의식 내부의 저편에 억압의 상태로 쌓여서
곪고 있었던 것이다. 은근과 끈기의 민족답게 마음속의 한을 눌러 감추거나 그것도 아니면 술을
통해 그 내부의 실체를 순간순간 떨쳐내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우리민족사를 훑어보면 이렇게 짧은 시간동안 민족에게 커다란 시련이 업친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
시대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2 김추자의 목소리

그러한 시기에 김추자의 보이쉬하면서도 간만의 차이로 소녀적인 발랄함과 애잔함 그리고 때로는 모성애적인 무게를 가진
목소리는 반도 대중의 무의식적인 한에 대한 처리방식에 있어서 혁명을 가져오게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여자에게는 일반적으로 51프로의 여성성과 49프로의 남성성이 내재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비율은 어떤 남자나 여자의
목소리에 나타나기가 쉽지 않은데 그녀의 목소리에는 그 프로태이지가 정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빼놓지 않고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면 그녀의
목소리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남성과 여성을 초월한 그 어떤 목소리 다른 차원의 목소리인 것이다.
그녀가 부른 메모를 남기고, 라는 곡을 감상해보면 특히 그 사실을 더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 민족은 은근과 끈기라는 허울이라면 허울이고 가면이라면 가면인 그 어떤
매너리즘에 가까운 제2의 얼굴을 쓰고 존재해왔다.
다시 말하면 애닮은 한의 정서를 가슴속에 담고 빌빌거리며 슬픔에 젖어 여성적으로 근근히 살아왔다.
그것이 어찌보면 조용한 아침의 나라 동방예의지국의 구성원으로서 선한 성향이라면 그럴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무능력하고 나약한 잔상이 다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증거로 김추자 이전의 대중가요를 들어보면 (
일제시대 노래나 사변 후의 노래들) 영상세대 즉 반도민족의 신세대 축에 드는 필자로서는 너무 슬퍼서
노래 전곡을 듣지 못하고 도중에 듣기를 멈추고 말 정도였다.
그 이전 노래의 역사라는 것이 식민시대와 사변 후의 짧은 시대라서 그다지 많은 수의 가수라고 할 수 없지만
 대부분 그러한 극단적이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나약한 정서나 아니면 현상유지적인 뉘앙스를 가진 발성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한 성향은 음악 뿐 아니라 영화라든지 문학 전반부에 팽배하고 있는 뉘앙스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간의 대중가요들은 그 한을 위로하고 회유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한이 쌓이면 순간순간 그것을 밀쳐내고
회피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하룻밤의 술로 잠시 어두운 세월을 잊듯이 말이다.
 
그러나 김추자의 아주 깊고 보이쉬하며 파워풀한 목소리는 한 차원 다른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음악이라곤 주로 클래식만 들어왔다. 뉴에이지 음악을 아주 가끔 듣기도 했지만 말이다.
클래식 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의 예를 들어볼까 한다. 그는 젊은 시절 우울증으로 고생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피아노협주곡을 들어보면 그런 흔적이 잘 들어나 있다.
 
그의 곡의 성향은 대충 이렇다. 초반부에는 침울할 정도로 다운된 음색이 전개되다가 중반부 후반부로 갈수록
서서히 경쾌하고 발랄한 음악으로 전개된다. 이런 식이어서 그의 협주곡들은 우울증 환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초반부에서는 우울한 이와 함께 철저하게 맞장구를 쳐주며 같이 우울해하는 것이다. 슬픔을 들어주고 동조해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우울한 사람에게
초반부터 신나고 경쾌한 음악을 들려준다면 그는 뛰쳐나가 버릴 것이다. 또는 내내 침울한 음악만 들려주면
병세는 더 나빠질 것이다.
그러한 패턴을 넘어선 그의 곡들은
결국 듣는 이로 하여금 후반부가 지나면 커다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서 증세를 가셔주는 것이다.
 
김추자의 목소리가 꼭 이와 똑같은 패턴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같은 결과를 양산한다.
그녀의 목소리가 나무라면 뿌리 줄기 잎사귀가 있다할 수 있다. 그녀의 잎사귀는 애잔하고 잔망스럽다.
그러나 그녀의 음색 줄기는 남자든 여자든
그 어떤 가수보다도 튼튼하고 파워풀하다. 남성과 여성을 초월한 그 어떤 목소리인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목소리는 민족적인 뿌리가 튼실하게 존재하며
그 어떤 가수의 뿌리보다도 깊고 튼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그녀의 이러한 내력은 우수한 체력에서 나왔을 것이다. 소싯적에 도대표를 할 정도로 그녀는
배드민턴과 참으로 힘겨운 운동인 기계체조를 했을 정도다. 배드민턴에서는 순발력과 집중력을 길러줬을 것이고
기계체조는 그야말로 그녀의 음악에 있어서 축복에 가까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녀의 목소리가 천부적이라고 말할 지 모르지만 물론 그 점에 있어서도 필자는 동의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 것이다. 학창시절 뼈 아프게 체력과 유연성을 길러온 소산이기 때문이다. 보통 가수라면 모르지만
가창력이 뛰어난 대형가수의 반열에 들면 노래를 목청으로만 부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온 몸으로 부르는 것이다. 저 아랫배에서 부터 심하면 저 발끝에서부터 기운을 끌어 올린다. 특히 기계체조는 알게모르게
그녀의 몸의 경혈과 경락을 시원하게 뚫어주었을 것이다. 인도에서 파생된 요가라는 것이 있다. 현대에는
여러 지역에 파급이 되어 일상화 되었다. 몸의 유연함을 길러주는 기계체조는 그 요가와 특히 휘트니스 요가와
거의 비슷해서 그런 효과는 확실하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하체의 힘은 많은 기여를 했음에 틀림없다.
 
69년도 그녀 앨범의 초판을 들어보면 온몸에서 뿜어져나오는 그녀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어찌보면 힘이 남아서 어디에
퍼줘야할 정도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인체가 유연해지고 경혈이 열리면 몸에서 소리의 진동이 맑아지지 않았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경혈이 열릴 수록 울림이 섬세해지고 소리가 맑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두성에 예외가 아닐
것이다.
 
 
 
3 민족적인 상실감
 
어린 시절에 가끔 들었던, 아니 들렸었던 그녀의 노래들을 요즘에 구해서 칠 팔십곡을 들어보았다. 하나같이 모두가
남열상열지사 즉 이별이나 그리움 등의 상실감을 담고 있었다. 하나같이.
 
김추자의 노래들을 다른 여가수가 김추자식의 목소리의 줄기가 깊고 파워풀한 식이 아닌
기존 여가수의 여성편향적인 식으로 
한국의 매스미디어에 김추자가
노래를 불렀던 수만큼 그리고 그 기간만큼 불렀다면 아마도 온 국민이 우울증 환자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던 것은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녀가 부른 노래들은 (그 시대에 대부분 그런 성향의 노랫말과
음색이지만),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식 위안을 주었던 것이다.
더 없이 슬프고 한스러운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강하고 깊고 파워풀한 줄기의 음색으로 말이다. 남성이나 여성을 초월한 그 어떤 목소리로 말이다.
그러나 목소리의 이파리는 더 없이 여성스럽고 모성애적인 넉넉함을 담고서 말이다.
마치도 민족의 대모령이 나타서 지친 자손 대중의 무의식을 달래듯이 말이다. 슬픔을 같이하는 정서와 목소리의
섬세한 이파리로
그러나 목소리의 줄기와 뿌리로는 은연중에 은근히 그러한 한도 좋지만 이제는 너무 지쳤으니 내 힘을 받고
떨쳐내라고 말이다. 기를 한껏 그것도 일이년도 아니고 장기간 팍팍 복돋워준 것이다.
 
만약에 김추자의 노래 거의 전부가 그렇듯 노랫말이 상실감을 담고 있지 않고 무턱대고 시끄러울정로도 발랄하고
현실과 동떨어질 정도로 몽환적으로 활달하고 경쾌했다면 그간의 서러움과 한이 무의식에 한껏 쌓인 반도대중에게는
크게 거부감이 들었을 것이다. 듣다가 체널을 돌리거나 뛰쳐나갔을 것이다. 
 
민족 대중에 쌓인 상실감을 달래주는 노랫말은 그런 대중의 뿌리깊은 무의식의 상실감과 하나가 되어 같이 슬퍼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러면서도 결과적으로는 깊고 파워풀한 목소리의 줄기로 인해 듣는 이 자신도 모르게 결국엔
힘을 얻고 슬픔을 떨치고 일어날 수 있는 결과를 낳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뿌리는 모계사회의 뿌리라서 어린아이들이 조금 아프면 모르지만 심하게 아프면 친할머니를 찾는게 아니라
외할머니를 찾는다고 한다. 이처럼 반도 대중의 무의식이 그리워하고 의지하고 싶은 대상으로서, 즉 모계혈통의 뿌리를 가진 구성원들의 대모령으로서 노래에 몸을 실어서 대중의 의식을 달래주고 힘을 주었다는 말이다.
 
나약하고 여성스러운 반도민족의 무의식에다가 그녀의 무의식이 장기간 꾸준히 말을 걸었던 것이다.
아니 무의식적으로 호통을 쳤던 것이다. 표면의식적으로는 슬픔을 같이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달래주었지만 말이다.
가수와 관중이 의도를 했던 하지 않았던 그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래 우리가 힘겨운 터널을 지나와서 슬프고 한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현재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않고 그 정서에 매몰되어 빌빌거리기만
해서는 안된다, 하고 말이다. 일어서라, 힘을 내라 하고 말이다.
 
남진씨나
나훈아씨와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김추자씨의 노래를 듣다가 그 분들 노래를 들으면 그분들은 남성인데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내다마는 듯해서 노래를 듣다마는 셈이 된다. 물론 그 분들의 다른 장점인 무대매너라든지 감정처리라든지
근사한 비주얼 등에는 극찬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분들의 가창력 또한 어디가면 빠지지 않는 가창력인데도 말이다.
 
그러한 결과는 그녀의 튼튼한 체력에다 타고난 음감 그리고 노래에 혼신을 실어서 하나가 되는 강력한 열정이 아니면
불가능한 결과일 것이다.
도인이라면 어떤 욕심도 없이 그냥 가만히 존재하는 것만으로 기쁨을 느끼는, 존재의 기쁨을 느끼는 사람일 것이다.
아주 독실한 기독인이라면 어떤 욕심이 없어도 그냥 가만히 있는 것 만으로도 신의 축복을 느끼고 미소가 저절로
나올 것이다. 생의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이처럼 김추자는 노래부르는 것 그 자체를 좋아하는 그야말로 노래와 하나가 되는, 노래를 부르면서 스트레스를
하나도 느끼지 않는 그런 가수처럼 느껴진다. 부르는 이가 그처럼 행복에 휩싸여 부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듣는 이 또한 그만큼 즐거운 것이다. 그만큼 노래는 자연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클래식 피아니스트 백혜선씨의 곡을 듣고 있으면 기저귀를 찬 계집 아이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는다.
천진무구한 느낌 그리고 손끝이 아니라 손끝에서 나오는 기운으로 피아노 건반을 다스리는 자연스럽고 천진함 말이다.
김추자의 노래를 들으면 그러한 느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어린 계집아이가 노래가 정말 좋아 틈만 나면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가수와 관중으로 서가 아닌

반도민족으로서 그녀의 노래를 들었던 관중들은 디바 김추자에게 감사해야한다.
 
아니 김추자의 무의식에게 감사해야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반도민족의 지친 무의식은 김추자의 무의식에게 감사해야한다. 
 
그녀가 데뷔하고 거의 사오년을 가수대상을 탔던시대가 있었고  그 뿐 아니라 그 후 해금되고도 적지 않은 시간
콘서트와 라디오 그리고 티브이를 통해
반도 관중들의 귀에 그 건강한 목소리가 들렸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필자의 논지는 큰 억측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름아이콘 이동준
2010-10-05 19:57
너무 좋은 글입니다. 김추자 포에버카페에 글을 퍼가겠습니다...
   
이름아이콘 이동준
2010-10-05 20:12
내용을 퍼갈 수가 없네요... 퍼벨스라는 닉네임으로 간단히 제 소견을 피력했습니다.
김추자포에버의 카페에도 글을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름아이콘 은하연합
2010-10-08 23:58
^^*......
   
이름아이콘 이춘우
2010-12-08 18:30
좋은 글이자만 빼! 본인이 싫으면  싫은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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