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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
[한국 팝의 사건·사고 60년](19) 추자의 전성시대 (신현준:한겨레신문)
 
구미의 대중음악을 논하는 문헌을 보면 1960년대는 ‘좋은 시절’이었던 반면, 70년대는 ‘그저 그런 시절’이었다는 식의 평이 심심찮게 나온다. 경험과 실감도 부족하니 논평은 삼가자. 그런데 되돌아보면 한국에서도 70년대에 접어들면서 ‘좋은 시절 다 갔다’고 말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60년대 말까지 그럭저럭 풀어 주었던 문화적 분위기가 70년대 접어들면서 옥죄는 방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거시적 수준에서 정치적 담론을 독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시적 수준에서 일상생활에 개입하는 정책들이 착착 진행되었고, 그 배후에 69년 1월 ‘3선개헌’의 추진을 시작으로 71년 4월의 제7대 대통령 선거를 거쳐 72년 10월의 ‘10월 유신’에 이르는 정치적 사건들이 있었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민족문화 중흥’의 기치 아래 ‘외래·퇴폐풍조 단속’을 선언한 정책 아래 남성의 머리카락 길이와 여성의 치마 길이까지 규제의 대상이 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대중음악계가 무사할 리는 없었다. 69년 시작된 ‘전국 보컬 그룹 경연대회’가 71년을 마지막으로 끝나버린 점, 그리고 그 에너지는 지하의 ‘고고 클럽’으로 숨어들었다는 점은 나중에 한 번 더 언급해야 할 것이다.

이런 지하의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없던 사람들에게 70년대 초반 주류 대중연예계는 ‘대형 슈퍼스타들의 라이벌전’으로 기억되고 있다. 남성 가수의 경우는 남진과 나훈아가 ‘오빠부대’라고 할 만한 팬층을 거느리고 용호상박의 라이벌전을 펼쳤다. 남진의 팬을 자처하는 이가 나훈아에게 병을 휘둘러 상처를 입히는 등 때로는 험악한 사건도 발생했다. 이보다는 정도가 덜했고 많이 잊혀졌지만 여성 가수의 경우도 김추자와 김세레나 사이에 자존심 싸움이 벌어진 일이 있다. 이들의 주요 무대는 아직 음반이나 방송보다는 극장에서의 ‘쇼’ 혹은 ‘리싸이틀’이었다. 서울 시민회관을 비롯한 대도시의 극장들에서는 가수의 이름을 타이틀에 건 ‘리싸이틀’이 성황리에 전개된 것이다. 당시의 업계 용어로 ‘아다마 가수(으뜸 가수)’라고 불렀던 이들 대형 가수들은 흥행의 보증수표였고, 이들의 쇼는 추석이나 설 같은 연중 대목을 장식했다.

흥미로웠던 것은 이들 스타들 사이의 라이벌전만큼이나 팬들의 극성스럽고 ‘능동적인’ 모습이었다. ‘사소한 데 목숨 거는’ 팬덤 현상은 도시화에 따라 대중연예의 새로운 형식이 그만큼 절실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라이벌이라는 상징 작용을 통해 ‘경쟁을 통해 승리해야 한다’는 의식을 대중의 신체에 깊이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이들 스타는 무대 위나 무대 뒤에서의 각종 사고나 스캔들로 연예계의 가십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70년대 최고의 대중스타로 김추자를 뽑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는 주류 연예계에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분고분한 연예인’의 이미지를 벗어던진 특이한 존재였다. 하체가 꽉 끼어서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나팔바지(판탈롱)와 민소매를 즐겨 입은 차림으로 손과 발을 휘저으면서 육감적인 춤을 추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었다. 비음 섞인 창법은 솔이라는 ‘외래풍조’를 기초로 토속적 감각을 가미한 독창적인 것이었다.
정상에 등극할 때까지 그의 배후에, 신중현의 작사와 작곡, 그리고 그의 그룹 덩키스, 퀘션스의 연주가 있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남진, 나훈아, 김세레나 등 70년대 초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들이 대체로 ‘재래가요’의 문법에 충실했던 반면, 김추자의 경우 ‘외래가요’(팝)와 ‘재래가요’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었다. ‘늦기 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님은 먼 곳에’, ‘거짓말이야’, ‘꽃잎’ 등의 ‘가요’들은 지하에서 그룹 사운드들이 연주하던 ‘광란의 솔·싸이키델릭 사운드’를 지상에서 뾰족하게 대표했다.

그의 존재가 흥미로웠던 것은 무대 위뿐만 아니라 무대 밖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출연 조건이 맞지 않으면 ‘펑크’를 서슴지 않았고, 주간지에서는 ‘노팬티설’, ‘열애설’, ‘임신설’, ‘간첩설’에 이르기까지 그를 둘러싼 풍문이 끊이질 않았다. 이 가운데 ‘간첩설’에는 또다른 루머가 전해 내려온다. 71년 7월 부산에서 열린 한 리싸이틀에서 그가 김세레나와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운’ 끝에 가수협회로부터 3개월 자격정지를 당하자, 그의 매니저 소윤석이 무대 복귀를 위해 연출한 ‘언론 플레이’라는 루머다. 자격정지에서 풀린 뒤 그에게 악몽 같은 ‘스캔들’은 발생했는데, 마침내 71년 12월의 리싸이틀 무대에서 김추자의 분신과도 같았던 소윤석이 휘두른 술병에 큰 부상을 입고 말았다. 그 뒤로 그는 재기에 성공했지만, 75년 12월 다시 한 번 시련을 맞이한 뒤 점차 세인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슈퍼스타의 ‘굵고 짧은’ 5년이었다. ‘1975년 12월’이란 이른바 대마초 파동이 일어난 시점이다. 그렇다면 4년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신현준/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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