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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
[가요비사]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 (임진모:신동아 2001년4월호)
[가요비사]    
   
‘국가대표 가수’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  
 
본격적인 TV시대가 열리기 전 극장 쇼는 대중가수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다. 수많은 스타가 숱한 에피소드를 만들어 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남진과 나훈아는 각각 윤복희, 김지미를 만나 결혼했다. 또한 한국 가요사에서 가장 완벽한 음을 구사했던 ‘천재가수’ 배호는 마지막 순간까지 열창을 뿜어냈다.
 
임진모 < 음악평론가 >    
 
 
   지금이야 대중음악의 중심지가 방송이지만 TV의 힘이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1960~70년대 가수들의 주요 활동무대는 극장 쇼였다.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던 ‘10대 가수 쇼’를 비롯, 스타의 이름을 내건 ‘리사이틀’이 전국 극장이나 야간업소에서 열려 관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 시절 가수와 관객은 무대에서 직접 만났다. 어떤 측면에서 지금보다 인간적 냄새가 물씬 풍겼고 그만큼 많은 일화를 쏟아냈다. 1960~70년대 극장 무대를 주름잡던 쇼단으로는 김영호 단장이 이끈 ‘AAA’와 최봉호 단장이 주도했던 ‘777’이 꼽힌다. 한 시대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스타들은 거의 이곳에서 배출됐고 그 유명세를 등에 업고 TV로 진출했다.

그러나 텔레비전에 아무리 얼굴을 많이 내밀어도 결국 수입원은 극장 쇼였다. 그래서 트로트 가수든 포크 가수든 극장 쇼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원로가수나 음악관계자들이 이때를 ‘가요의 황금기’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다. 당시 쇼 무대 사회자들이 털어놓는 스타들의 비화(秘話)를 통해 그 시절 가요계로 돌아가 본다.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  

   김세레나가 무대 욕심의 여왕이라면 김추자는 ‘무대장치 욕심의 여왕’이었다. 노래는 기본이고 조명, 마이크 상태 그리고 무대배경 등 장치에 무서울 정도로 집착했다.

특히 ‘부분조명’에 목숨을 걸다시피 해 ‘이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얼굴만 비추고 이 대목에서는 가슴만 비추어달라’ 등등 세세하게 조건을 따졌다. 김추자의 무대철학은 “조명, 마이크와 같은 노래 외적인 요소의 뒷받침이 완전해야 노래가 살아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무대장치 욕심과는 달리 타이틀이나 위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1974년 서울시민회관의 김추자 리사이틀 때, 많은 외국인들이 벌떼처럼 그에게 몰려와 사인을 요청했다(김추자는 유독 국내거주 외국인 팬이 많았다).

그 무렵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추자의 전성시대’였다. 내국인 팬들이라 할지라도 감사의 제스처를 보이는 것이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스타의 당연한 자세였지만, 그는 미소도 짓지 않고 단 한마디 말도 없이 그저 냉정하게 외국인들에게만 사인 해주었다. 그래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관계자들이 도리어 민망해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남진 나훈아에 뒤지지 않는 폭발적 인기를 누려 능히 ‘방송 10대 가수상’을 받고도 남을 가수였지만, 김추자는 단 한 번도 10대 가수에 들지 못했다. 그런 상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늘 혼자 있기를 좋아했고, 주변의 지원도 내켜하질 않았다. 늘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나 혼자 개척해서 최고 가수가 되겠노라”고 스스로 되뇌곤 했다.

그의 ‘나 홀로’ 버릇은 가히 미스터리였다. 외부와 접촉을 차단한 채 언제나 혼자서 조용하게 처신했다. 심지어 분장실도 별도로 썼다. 분장실에는 당연히 거울을 걸어야 했다. 그래서 김추자 공연을 준비한 극장측은 극장 사장의 거울을 떼다가 그의 전용분장실에 달아주기도 했다. 터질 듯한 율동과 내지르는 가창이 그의 상표임을 감안할 때 그런 무대 뒤의 ‘폐쇄성’은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노래도 절창이었지만 신들린 요정과도 같은 그의 춤은 하나의 전설이었다. 마치 무척추 동물처럼 휘면서 추는 춤, 그리고 하체의 굴곡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만큼 몸에 딱 달라붙는 판타롱 바지는 한때 ‘노 팬티’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을 정도로 전국의 화제였다.

1973년 부산 보림극장에서 열린 김추자 리사이틀에서는 한 남자 관객이 느닷없이 ‘와! 노 팬티다!’ 하고 소리쳐 객석이 크게 술렁인 적도 있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김추자 공연 때는 평소 뒷자리에 앉는 남자들이 ‘뭘 보려 했는지’ 무대 앞으로 대거 몰려나오기 일쑤였다.

그러고 보면 김추자는 이 시대를 수놓고 있는 이른바 ‘비주얼 댄스가수’의 선구자였다. 지금 가수들은 모든 게 요즘 새로 생겨난 것이라고 강변할지 모르지만, 따지고 보면 다 뿌리와 계보가 있는 법이다.

보여주는 댄스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 더욱이 ‘님은 먼 곳에’를 비롯한 그의 히트곡이 잇따라 재조명되는 시점에서, ‘비주얼의 원조’인 김추자의 컴백소식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다시 돌아와 예전처럼 세심하게 신경 쓴 무대장치와 함께 보여줄 그의 환상적 열창무대가 기대된다.

김추자를 말하면서 같은 ‘신중현 사단’이며 댄스음악 붐을 일으켰던 배인순 배인숙 자매, 바로 ‘펄 시스터스’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가요계 최고의 듀엣이었던 이들은 다른 가수들과 달리 극장 쇼의 인기를 업고 방송으로 진출한 게 아니라 반대로 텔레비전의 인기를 가지고 무대로 뻗어간 예였다. 이것은 그들이 요즘 말로 ‘오디오 비디오 겸용가수’이며 나아가 ‘비주얼 시대’의 효시임을 말해주는 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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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이뉴스24 | 기사입력 2004-11-13 14:53   무등산 타잔 박흥숙, 가수 김추자 등 실제 인물들의 삶이 영화로 속속 제작되고 있다. 이처럼 실제 인물들을 다룬 영화가 잇따라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보다 꾸미지 않은 강력한 드라마가 매력적이며 그들의 인지도가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때문이다. &n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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