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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
<13> 김추자, 대타에서 스타로 (한국일보:2003년3월18일)
김추자 통해 한국 록 실험

사연이 많았던 가수 김추자를 어찌 잊으랴. 한국적 록과 쇼 비즈니스의 영욕을 고스란히 함께 맛 본 김추자를 1982년 이후 직접 만난 적은 없다.
최근 나와 일체 상의도 없이, 내 곡들을 중심으로 리메이크 음반을 냈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그 음악을 들어보니 옛날의 그 빛났던 보컬이 퇴색된 듯 해서 안타까울 뿐이다.

김추자와의 첫 만남은 무덤덤했다. ‘펄’의 히트 이후 미 8군 내 나의 사무실 유니버살에는 재기발랄한 여가수들이 줄줄이 몰려 왔다.

남편과 함께 찾아 와 내 곡을 받겠다고 한 김상희가 ‘어떻게 해’ 등을 연습하고 있던 69년 어느 날이었다. 안 그래도 가수 지망생들이 줄을 잇는 판에, 나는 동국대 2학년생이 찾아 왔다는 말을 듣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일단 음반 제작 작업에 들어가면 딴 일에는 아예 무심한 편이었다. 게다가 끊임없이 편곡을 해 밴드에게 악보를 나눠 주고 연습을 시켜야 했던 일상 역시 변함 없이 바빴다.

김추자는 거의 매일 와서 길게 목을 빼고 내가 한 번이라도 봐 주기를 기다렸다. 그러기를 한달여, 통기타 반주로 직접 테스트를 해 봤다.

‘펄’의 ‘님아’를 첫 곡으로 선택했는데, 너무 긴장했던 탓에 박자를 까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몇 곡 해 보니 탄탄한 목소리가 살아 오는 것이었다.

특히 트로트 풍이 아닌 현대적 감각이 몸에 배어 있어 마음에 들었다. 그 후 그녀는 매일 오후 어김 없이 나타나 트레이닝을 기다렸다. 내가 지시하는 대로 한 구절씩 불러 가는 식이었다.

그 다음엔 곡을 하나씩 써 주기로 했다. 첫 곡 ‘늦기 전에’를 신호로 해 ‘나뭇잎 떨어져’, ‘월남에서 돌아 온 김상사’ 등이 뒤를 이었다. 나는 김추자라는 보석을 통해 한국적 록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늦기 전에’를 한번 보자. 경쾌한 소울을 구사해 오던 김추자가 뒷 부분에서는 갑자기 목소리 톤을 바꿔 우리 타령조로 나간 사실을 일부 팬은 눈치챘을 것이다.

그게 국내 대중 음악계에서 처음 도입해 본 판소리 창법이다. 하여튼 그 곡은 71년 1월 노래책 ‘대중가요 제 49집’에서 70년도 가요 추천 1위로 선정됐다.

그러나 내게는 아직도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옛 것만을 답습하는 현실 앞에서 혁신적 시도는 외면당할 수 밖에 없었다. ‘나뭇잎 떨어져’, ‘가버린 사람아’ 등 함께 발표했던 곡들 모두 그때 선조차 보이지 못 했다.

현실에서의 통로라면 방송이 유일한 때였는데 방송에서 아예 틀어주지 조차 않으니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미 8군 일 때문에 눈코 뜰새없이 바빴고, 김추자는 새파란 초년병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 지 몰랐다.

그렇게 1년을 허송하고 나니 전혀 예기치 못했던 데서 돌파구가 생겼다.

동양 TV가 70년 ‘님은 먼 곳에’라는 새 연속극을 계획하면서 그 주제가 작곡을 내게 맡긴 것이다. 그러나 어이 없게도 방영 이틀 전이었다.

밤 새워 곡을 쓴 나는 다음날 오후 2시 악보를 들고 방송국으로 갔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첫 회 방송이 그 다음날 저녁이었다.

PD가 주문할 때는 미8군 시절부터 알고 있던 패티김이 노래를 부르기로 돼 있다고 해서 거기에 맞게 작곡했던 것인데, 녹음 시간이 돼도 ‘함흥차사’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간에 연락이 잘못돼 패티김은 시민회관에서 리사이틀 중이었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다급해진 담당 PD는 “오늘 중으로 주제가를 녹음하지 못 하면 내 목이 잘린다”며 대타로 할 신인 가수라도 찾아 오라고 매달렸다.

나는 사무실 직원을 다 풀어 김추자 긴급 수배령을 내렸다. 천행으로 그날 저녁 찾아 낸 김추자를 방송국으로 데려가 밤새 연습시켰다.

그렇게 방송을 탄 곡이 선풍적 인기를 끌어 김추자는 일약 스타로 도약했다. 당시 그룹 ‘퀘션즈’와의 시민회관 공연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었던 내게 ‘님은 먼 곳에’는 대중적으로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유행어까지 생겼다.  

입력시간 : 2003/03/18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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