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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
[남기고싶은이야기들]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신중현:중앙일보)

[남기고]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20. 김추자 [중앙일보] 2006.1.27.

드라마 주제가 ‘님은 먼곳에’
패티 김이 펑크 내 대신 불러

가수 지망생 김추자가 찾아왔지만 막상 오디션을 볼 시간이 없었다. 그때 난 김상희의 음반 작업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기 때문이다. 김추자에게 말했다.

"지금 하는 음반 작업이 끝나면 테스트를 할 테니, 그리 알고 있어라."

"매일 와서 구경해도 될까요?"

"상관없다. 분위기 구경이야 뭐, 얼마든 해도 되지."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사무실에 나와 음반 내는 과정을 지켜봤다. 나는 음반 작업에 매달려 있어서 이야기조차 나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매일 아침에 왔다가 저녁에 돌아가는 건 알고 있었다.

'끈질기군. 자세가 되어 있는데….'       

한 달쯤 지났을까. 음반 작업이 드디어 끝났다. 김추자를 불렀다.

"노래 한번 불러봐라."

그녀는 펄 시스터즈의 '님아'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테스트에 당황한 모양이었다. 열심히 부른다고 부르는데 박자를 자꾸 틀렸다. 틀릴수록 더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가능성이 보였다. 노래도 잘하고 음악성도 갖춘 듯했다.

"연습 한번 해보자. 가망이 있겠다."

마음을 놓은 김추자는 실력을 발휘했다. 그래서 바로 음반 작업에 들어갔다. 김추자에게 줄 노래를 쓰기 시작했다. '늦기 전에'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나무잎이 떨어져서' 등이 그때 나왔다. 그러나 펄 시스터즈처럼 금세 히트한 건 아니다. 나는 곡을 쓸 때 상업성보다 음악성에 중점을 뒀다. 진정한 음악으로 인정받고 사람들이 애창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했다. 김추자의 경우도 그런 과정을 밟지 않을까 걱정됐다. 이 곡들 역시 이정화의 '봄비'나 '꽃잎'처럼 발표 당시엔 아무도 쳐다보지 않다가 뒤늦게 인정받았다.

시민회관 등에서 열린 내 공연에 김추자를 데리고 나가기 시작했다. 얼굴과 노래가 조금씩 알려졌다. 그러던 1969년 어느 날 TBC(동양방송)의 어떤 PD가 나를 찾아왔다.

"드라마 주제곡을 신형이 꼭 써주셔야겠습니다."

그는 '님은 먼곳에'란 드라마의 대본과 기획서를 건네줬다. 첫회 드라마 방영을 단 이틀 남겨놓고 있었다. 노래는 패티 김이 부를 예정이니 그에 맞게 써달라는 것이다. 얼떨결에 일을 맡게 됐다. 급히 노래를 지어 다음날 밴드를 데리고 방송국 녹음실로 갔다. 그런데 PD가 사색이 됐다. 노래를 부르기로 한 패티 김이 시민회관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패티 김 측과 언성을 높이며 통화하더니 그는 내게 말했다.

"신형이 데리고 있는 가수 누구든 좋으니 오늘 녹음만 마쳐 주십시오."

데리고 있는 가수라야 김추자뿐이었다. 매니저에게 김추자를 찾으라고 했다. 세 시간가량 지난 오후 8시쯤 김추자가 녹음실에 도착했다. 그 자리에서 연습해 곧바로 녹음에 들어갔다. 녹음은 밤늦게 끝났다. 드라마는 그리 인기를 얻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곡이 너무 아까웠다. 1년 뒤 김추자의 새 음반에 '님은 먼곳에'를 넣었다. 그리고 대박이 터졌다. 김추자는 그 곡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남기고]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21. 미8군 무대 공략기
[중앙일보] 2006.1.31

엘비스 프레슬리 흉내로 인기
김추자 등에게 쇼맨십 전수
 
김추자는 미군 무대 경험이 없었다. 미 8군에서 뼈가 굵은 펄 시스터즈와는 다른 전략을 써야했다. 미국적인 동작이 몸에 밴 펄과 차별화해 김추자에게는 한국적 율동을 찾도록 지도했다.

나는 가수들에게 노래 뿐 아니라 무대 매너까지 철저하게 가르쳤다. 음악만 잘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무대에 서는 순간 짜임새 있는 쇼맨십을 보여줘야 대중을 열광시킬 수 있다. 미 8군에서 내 쇼가 인기를 끌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처음에야 뒷자리에 처박혀 기타만 죽어라 쳤지만 점점 무대 앞으로 내몰리다 보니 몸을 던지는 수밖에 없었다. 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몸짓이 무엇인지 연구했다. 밴드 멤버들과 함께 안무를 짜기도 했다. 우리가 공연하면 미군들은 사진을 찍어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미군 오디션에서 내 솔로 타임이 '그레이트'란 평가를 받은 것도 세련된 쇼맨십이 가점을 얻은 덕분이라 생각한다.

내 율동의 영원한 고전은 고교 시절에 본 엘비스 프레슬리 주연 영화 '러브 미 텐더'였다. 그가 기타를 들고 노래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 모습에 홀딱 반한 나는 곧장 남대문 시장으로 달려갔다. 청재킷과 청바지를 한 벌로 사서 입고는 거울 앞에서 죽어라 엘비스 프레슬리를 흉내냈다.

이후 수많은 참고자료를 연구했지만 그 영화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발견하긴 어려웠다. 결국 엘비스 프레슬리의 쇼맨십이 바로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무대에도 어울렸다. 고교 때 열심히 갈고 닦은 그 동작을 미 8군에서 쏠쏠히 써먹었다. 이후에도 엘비스 프레슬리의 뮤직비디오를 많이 참고했다.

미8군의 연예회사 화양에서는 매주 구하기 힘든 뮤직비디오나 영화를 상영했다. 각종 음악 영화, 뉴포트 재즈페스티벌 등 일반인은 구하기 힘든 음악 관련 필름을 실컷 볼 수 있었다. 연예인들이 그걸 보며 연구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자료를 제공한 좋은 시스템이었다.

애드훠를 구성하기 직전, 미 8군 무대용 4인조 그룹 클럽 데이트를 결성했던 시절에 내 쇼맨십은 극에 달했다. 키 작은 내가 장대같이 큰 신지철(색소폰)의 가랑이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기타를 연주하며 신기에 가까운 실력을 발휘했다. 그 노하우를 김추자를 위시한 신중현 사단의 가수들에게 전수했다.

나는 가수들을 붙잡고 일대일 훈련을 강행했다. 노래 단어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느낌을 제대로 소화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했다. 연습은 늘 밴드의 라이브 반주로 진행했다. 신인가수 혼자 노래만 연습하다 무대에 서면 기가 질리고 만다. 그러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무대를 압도하는 힘을 길러야 했다. 신중현 사단의 가수들은 연습을 통해 저절로 무대 경험을 익혔다. 그런 훈련을 거치면 소리가 목이 아니라 몸으로부터 나오는 체질이 된다. 그래서 내가 배출한 가수들은 무대 위에서 훨훨 날았다. 무대 매너도 좋고, 율동은 자유자재로 행했다. 모두 기가 살아 있었다. 게다가 모두 노력파였다.

 

[남기고]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26. 김추자의 매니저 [중앙일보] 2006.2.7.

몇 달 동안 소식 없다 불쑥 찾아와
`곡 내놓으시오`… `거짓말이야` 줘

'님은 먼곳에'로 스타덤에 오른 김추자가 1970년 말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자신의 매니저와 함께 내겐 상의도 않고 독립한 것이었다. 몇 달 동안 소식이 없던 그의 매니저가 어느 날 내가 공연하던 서울 명동의 레스토랑으로 찾아왔다. 매니저는 다짜고짜 내게 곡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그는 주먹계에서 꽤나 유명한 인물이었다. 상당히 위압적인 태도에 벌컥 화가 났다.

"소식도 없이 사라졌다가 느닷없이 곡을 내놓으란 말이야? 건방진 친구 아닌가."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나이프를 집어들었다.

"그래, 어디 한번 찔러봐라!"

그는 한동안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내 눈을 주시하다가 나이프를 벽으로 던졌다. 평소 나를 '형님'으로 모시던 게 부담이 됐던 것이었다. 그의 손을 벗어난 칼은 대형 유리창을 깨뜨렸다. 레스토랑 안 분위기가 일순 살벌해졌다. 나는 곧바로 웨이터를 불러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방에 가서 사시미 칼 하나 가져오게. 이놈이 날 못 찌르니, 나라도 찔러야겠다. 빨리 가져와!"

그제야 매니저는 내게 사과했다. 그날의 상황은 그것으로 일단락됐다.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화가 났지만 한편으론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어차피 내 제자가 아닌가….

그래서 다시 건네 준 곡이 '거짓말이야'였다. 또 시간이 흘렀다. 71년 12월 초 김추자의 매니저가 또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비장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내일 제가 일 좀 저지르겠습니다."

"무슨 일인데?"

"내일 아침이면 아시게 됩니다."

다음날 뉴스를 보니 그가 김추자에게 소주병을 휘둘렀다는 내용이었다. 김추자가 자신을 멀리하고 '언니'라는 사람과 함께 다니는 데 화가 나 저지른 일이었다.

그런데 하필 사고 며칠 뒤인 71년 12월 9일 시민회관에서 내 리사이틀이 예정돼 있었다. 김추자도 출연키로 돼 있었다. 김추자를 불러 설득했다.

"네가 사고당한 건 사람들이 다 알고 있으니 노래는 못 부르더라도 관객에게 인사는 드리는 게 도리인 것 같다."

김추자는 휠체어에 몸을 싣고 얼굴에 붕대를 감은 채 무대에 나와 인사만 하고 들어갔다. 나에 대한 의리를 지킨 것이다.

그 일로 1년 징역형을 살고 72년 말 출소한 매니저가 나를 찾아왔다. 꽤 오래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사실 나는 그 친구의 덕을 많이 봤다. 그 시절 연예계는 법보다 주먹이 앞섰다.

전국으로 공연을 다니던 신중현 사단도 '주먹세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주먹계에서 힘있는 사람이 내 휘하의 매니저로 활동하는 바람에 전국 어디에서든 극진하게 대접받으며 안전하게 공연할 수 있었다.

그같은 매니저 여럿이 나를 거쳐갔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나를 찾아왔다. 신중현 사단의 일을 본다고 하면 주먹세계에서도 위신이 서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신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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