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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
내 청춘의 뼈와 살을 녹였던… (이성욱:한겨레21)
 

내 청춘의 뼈와 살을 녹였던…

이성욱/ 문화평론가 60년대 말 우리나라도 대중문화의 하층토를 서서히 다지기 시작했다. 쓰 레기는 여전히 나무사과궤짝에 담아 새벽에 골목을 누비며 오는 쓰레기차 에 던져 넣어야 하고, 시간제 급수로 인해 물 받아먹기가 미제 단추 초콜 릿 얻어 먹는 것만큼 힘들 때였으니 문화소비라는 말이 있을리는 만무였 다. 하지만 그때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로커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 록의 비조로 간주되는 신중현과 키보이스를 이끌었던 김홍탁은 그중 가장 전도 가 양양하던 존재들이었다.

인생 최대의 목표가 된 ‘해변의 키스’ 방귀깨나 뀌고 책권이나 뒤적인 식자들이야 다르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는 여름휴가가 뭔지 바캉스가 도대체 미국 개 이름인지 프랑스 개 이름인 지조차 구분되지 않던 것이 일반이었지만 그래도 젊은 청춘들 사이에 여 름 바캉스니 캠핑이니 하는 말들이 흘러다니며 그들의 가슴을 한껏 달뜨 게 만들기 시작하던 때도 그 무렵이었다. 키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는 바로 그런 60년대식 ‘신세대’를 겨냥한 노래였다. 10살도 채 안 된 ‘꼬맹이’ 나도 마디마디 물수제비 뜨듯 경 쾌하게 진행되는 노래의 전주부와 거의 혁명적인(!) 노랫말로 꾸며진 그 노래 앞에서 몸이 그냥 대책없이 액체로 허물어질 지경이었다. 마치 ‘도 란지스터 나지오’ 뒤에 고무줄로 매여있는, 그러나 그 라디오보다 더 큰 건전지 덩어리에 혓바닥을 댔을 때 오는 저르르한 느낌, 바로 그런 것이 었다.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연인들의/ 해변으로 가요/…/ 불 타는 그 입술 처음으로 느꼈네”. 모름지기 바닷가로 캠핑을 가려면 저 정도는 되어야 한다, 별빛 아래 애 인과 고즈넉이 걸으며, 거기다 뜨거운 입맞춤을…. 그때부터 예의 <해변 으로 가요>가 그려내는 해변의 풍경은 그 ‘꼬맹이’에게 인생 최대의 목 표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 목표가 항용 그렇듯이 결국 한번도 이루지 못 한 꿈으로 남아있다. 그래도 지난 여름, 베트남의 나트랑 해변 남십자성 아래서 여자 후배들과 그 노래를 미친 듯 불러젖혔다. 물론 불타는 그 입 술은 어디서도 챙길 수 없었지만. 키보이스 못지 않게 신중현의 노래도 꼬맹이의 입술과 몸을 자꾸 자극했 다. 신중현이 키운 펄시스터즈의 노래는 노랫말도 그렇지만 특히 몸을 가 만 놓아두지 않았다. “변해버린 그대여/…/ 그대를 어찌하리/ 내가 싫으 면/ 떠나가야지/ 이제 다시는 싫어”(<님아>). “온다하던 그 날은/ 수없 이 지나가 버렸네/ 젊은 날의 내 청춘도”(<님아>) 등의 노랫말이 솔 리 듬을 탈 때 펄시스터즈는 나팔바지의 아랫단이나 옆으로 트인 롱스커트에 바람을 일으키는 맵시있는 솔 춤으로 사내들의 아래턱을 항상 적셔놓곤 했다. 딱히 배운 바도 없고 누구를 사숙한 바도 없지만 펄시스터즈가 <쇼 쇼쇼>에 나와 춤을 출 때면 내 몸은 제 스스로 돌아갔다. 이즈막 가끔 술 집에서 취기를 핑계로 추는 솔 춤은 그 때 꼬맹이의 몸에 단단한 육체의 기억으로 자리잡은 춤기인 바, 내 머리의 아둔한 기억력과는 상관없이 내 몸은 때만 되면 그것을 오롯이 기억해내 다시 몸 밖으로 밀어내곤 한다. 주책없이!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 (사진/김추자의 노래와 춤은 나의 꼬맹이시절을 달뜨게 하곤 했다. )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나름의 연습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집안이 부도 나기 전 어느 날 우리집에도 ‘테레비’와 전축이 들어왔다. 동남샤프TV 였고 전축은 겉면이 마치 호마이카 상처럼(당시 동네 아줌마들의 숙원사 업이 ‘스덴’ 그릇 일습과 호마이카 상 하나 들여놓는 것이었다. 그걸 사기 위해 아줌마들은 푼돈으로 호마이카 계를 들곤 했다) 반들반들했다. 어머니, 아버지, 거기다 형까지 가세하여 ‘양판’(LP)을 전축에 올려놓 고 춤추면 10원을 준다는 유혹을 제시하곤 했다. 현찰에 눈먼 나는 벤처 스 악단을 틀어놓고는 트위스트를, 펄시스터즈를 틀어놓고는 솔을 정말 열심히 춘 것이다. 머리든 몸이든 유아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아직 도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김추자 이상이 없었다. 당시 최고급 담배는 청자였 다. 그것도 일반 담배가게에서는 내놓고 팔지 않았다. 다방 ‘얼굴마담’ 들이 계산대 밑에 숨겨놓고 단골 ‘사장님’한테만 은밀히 팔던 담배였다 . 해서 당시 떠돌던 말이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였다. 그녀의 데 뷔곡 <꽃잎>은 비록 이즈음 리메이크곡이 고유의 ‘아우라’를 망쳐놓기 는 했지만 웬만큼 들어 다 알 터이니 넘어가자. TBC방송국의 드라마 주제 곡이었던 <님은 먼 곳에> <거짓말이야> <왜 아니올까> <늦기 전에> 등은 시쳇말로 주옥이었다. 가장 순정한 농염기로 온 몸과 온 목소리를 장식하 고 거기에 당대 최고의 여성 뮤지션 앤 마거릿을 능가하는 폭발적인 춤 솜씨가 보태지는 풍경은 가히 절경이었다. 흘러가던 물도 잠시 멈춰서는 형국이었으니 내 짧은 혀로 더이상 말해 무엇할까. 공정성에 시비를 걸 사람은 많겠지만 나는 여즉도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김추자 이전에 가수 없고, 김추자 이후에 가수 없다는 신념으로 살아가고 있는 형편이다. 김추자가 우뚝한 봉우리로 존재할 그 즈음은 이른바 월남전이 날로 격화 되던 때이다. 한국도 비둘기부대를 위시로 맹호, 백마, 청룡부대들이 파 병되었다. 우리는 맹호부대 용사들이 배를 타고 파병될 때 부산 부두에 나가 태극기를 열심히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맹호는 간다>였다. “자유 , 통일 위하여 님들은 가셨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 어릴적 마음으로도 괜히 비장함과 우수가 적당히 섞인 선율과 노랫말 이었다.

거금 1만원으로 ‘야전’을 사다   그 맹호부대 용사가 김추자의 노래를 통해 돌아왔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였다. 목숨값으로 획득한 파나소닉 라디오, 시-레이션(미군 전투 식량)박스, 대검, 그리고 야자수 나무 아래서 하얀 아오자이 입은 베트남 처녀와 같이 찍은 흑백사진을 지닌 채. 어쨌든 그 노래는 당시 전국 꼬맹 이들의 전쟁놀이에서 부르지 않으면 안 될 필수적인 군가가 되었다. 미국 이 일으킨 월남전이 세계전쟁사에서 가장 비열한 전쟁이라는 사실을 당시 ‘꼬맹이’는 알 리가 없었다. 머리알이 굵어질 고등학교 1학년 무렵 나는 비로소 가장 소중한 재산을 소장하게 된다. 어찌어찌 모은 거금 1만원으로 ‘야전(야외전축/포터블 전축)을 사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때 한국대중음악사의 인걸들은 모두 박정희의 군기잡기 시범케이스에 걸려 한데로 유배된 지 오래고 조용필마 저 낭인의 신세가 되어 밤무대를 전전하던 때였다. 우리는 야전과 엘피를 옆구리에 끼고는 산으로 바다로 쏘다녔다. 그래도 ‘야전’에 걸려 돌아 가는 노래는 김추자, 신중현, 펄시스터즈였다. 노래는 가도 세월은 남는 것!(어째 박인희 노래 가사 표절 같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2월18일 제 1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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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밤의 TV연예(SBS-TV) 201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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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 20. 김추자 [중앙일보] 2006.1.27. 드라마 주제가 ‘님은 먼곳에’ 패티 김이 펑크 내 대신 불러 가수 지망생 김추자가 찾아왔지만 막상 오디션을 볼 시간이 없었다. 그때 난 김상희의 음반 작업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기 때문이다. 김추자에게 말했다."지금 하는 음반 작업..
2005-09-22 [한국 팝의 사건·사고 60년](19) 추자의 전성시대 (신현준:한겨레신문)
 구미의 대중음악을 논하는 문헌을 보면 1960년대는 ‘좋은 시절’이었던 반면, 70년대는 ‘그저 그런 시절’이었다는 식의 평이 심심찮게 나온다. 경험과 실감도 부족하니 논평은 삼가자. 그런데 되돌아보면 한국에서도 70년대에 접어들면서 ‘좋은 시절 다 갔다’고 말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60년대 말까지 ..
2005-04-21 김추자, 한국 대중음악의 불멸의 연인 (최지선:컬쳐뉴스)
     최지선의 여성음악인 열전   김추자, 한국 대중음악의 불멸의 연인 소울․사이키 사운드의 ‘대중적’ 완성의 정점   2005-04-21 오후 2:11:38  최지선 _ 대중음악평론가]    &n..
2004-11-13 '무등산 타잔' '김추자' 등 실존 인물 영화 제작 붐 (조이뉴스24)
 조이뉴스24 | 기사입력 2004-11-13 14:53   무등산 타잔 박흥숙, 가수 김추자 등 실제 인물들의 삶이 영화로 속속 제작되고 있다. 이처럼 실제 인물들을 다룬 영화가 잇따라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보다 꾸미지 않은 강력한 드라마가 매력적이며 그들의 인지도가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때문이다. &n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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