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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
김추자, 한국 대중음악의 불멸의 연인 (최지선:컬쳐뉴스)
 
   최지선의 여성음악인 열전
 
김추자, 한국 대중음악의 불멸의 연인
소울․사이키 사운드의 ‘대중적’ 완성의 정점
 
2005-04-21 오후 2:11:38  최지선 _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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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인도/아침(이봉조 작곡집)》, 유니버어살, KLS-100, 1974.06

다들 알고 있듯 김추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성 보컬리스트이다. 펄 시스터즈의 가요계 석권 직후, 신중현식 소울․사이키 사운드의 ‘대중적’ 완성은 김추자에게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글에서 초점을 두어 살펴 볼 것은 바로 이 시점에 해당되는 것이다.

 

작곡가와 보컬리스트의 화학작용

앞서 열거했던 많은 가수들이 그러했듯, 이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발표된 후 시간이 지난 다음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현재 1970년대를 대표하는 대중음악계의 지존 김추자의 경우도 그랬다. 1969년 10월 발표된 그녀의 첫 음반 《늦기 전에/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는 즉시에 폭발적인 대중적 인기를 불러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신중현과 김추자의 돌파구는 <님은 먼 곳에>가 텔레비전 연속극 드라마 주제가로 서서히 인기를 누리기 시작하면서였다. 이 곡 역시 1위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반년이 걸렸다.

노래의 성질상 한꺼번에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지는 못했지만 은근한 매력으로 꾸준한 인기를 지속하던 김추자의 「임은 먼 곳에」가 차트에 오른 지 반년만에 드디어 전국 톱이 됐다. TBC TV 연속극 주제가였던 이 곡은 추자의 노래도 좋았지만 신중현의 작곡 중에서도 수작으로 꼽히고 있는데 추자뿐 아니라 수많은 유명 무명의 포크 싱거들이 TV나 살롱가에서 즐겨 불러주었던 것도 히트하는데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불황속에서도 김추자 1위」 『일간스포츠』1971년 1월 16일)

《늦기 전에/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예그린/성음, 1969)
김추자의 데뷔 음반.

그녀의 인기는 1971년 <늦기 전에>(주동진 감독, 신영균 김지미 주연)이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이성구 감독, 신영균 윤정희 주연) 등이 영화로 제작되었던 사실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김추자가 처음 등장했을 때 모든 이들이 ‘극찬’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소울 가요’는 퇴폐, 선정, 저속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그것은 기성 세대들의 관점이었고 반대로 젊은 세대는 이에 열광했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 소울 리듬을 대중화시킨 엘리뜨 신중현 씨가 신인 김추자 양에게 준 신곡. 가사 전달, 창법 등이 세련되지 못한 것이 험이기는 하지만 멜로디를 형성한 소울 반주가 무리를 없도록 한다. 펄 시스터즈가 노래한 <임아> <커피 한잔> 등과 같이 돌풍적인 멜로디가 신인 김추자에게서 얻어지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 듯. (「최신가요 앨범」 『가요생활』 1970년 1월호)

지난 회의 펄 시스터즈의 이야기는 작․편곡가이자 연주가로서 후광 역할을 했던 신중현과, 그 사운드 메이킹을 구현하는 실체로서 여성 보컬리스트라는 체계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김추자의 경우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러한 신중현과 여가수 시스템의 완성을 보여주는 예이다. 어쨌든 1969년 말 펄 시스터즈의 히트 이후 여성 가수들이 신중현에게 몰려왔고 그 중 하나였던 김추자가 신중현과 조우한 것은 기다리기 한 달 여만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데뷔 공연에 대한 한 기사를 보자.

펄 시스터즈와 이정화(봄비) 등을 탄생시키고 최근 김상희(어떻게 해, 나만이 걸었네)의 이미지 변화를 이룩해낸 작곡가 신중현 씨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내었다는 신인 여가수가 등장, 가요계의 시선을 끌고 있다. 이번 신인 여가수 김추자의 데뷔는 마침 클리프 리처드 내한공연, 월드컵 축구 서울예선 등 커다란 국제적 경기와 함께 겹치는 가운데 놀랄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 신중현 매머드 리사이틀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초 연주시간을 갖는 이색적 사이키 작품 「늦기 전에」를 데뷔곡으로, 김양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의 총 6곡의 LP도 함께 발표했다. (「신중현 리싸이틀서 선보인 신인들: 사이키의 김추자... 황소가수 소윤석」, 『주간경향』, 1969년 11월 15일)

 

강렬한 폭발성, 육감적인 도발성을 내장하다

 
《님은 먼 곳에/기다리겠오(신중현
작곡집)》 유니버어살, 1970년 6월
김추자가 등장하자 많은 사람들(특히 젊은이들)은 그녀의 풍부한 성량에 압도되었고 관능적인 몸짓에 매혹되었다. 펄 시스터즈에 대한 글에서 살펴본 바 있듯 특히 여성 보컬리스트들의 직설적인 화법이 이 시대를 통해 투영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 이전과 달리 가사 및 어조의 화법마저 말 그대로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었다. 다시 말해 (지금과 비교할 바는 아니겠지만) 내적, 외적(신체적)으로 모두 체현된 것이다.

특히 김추자는 강렬한 폭발성과 육감적인 도발성을 내장하고 있었다. 여기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것은 춤사위와 겸비된 목소리이다. 때로는 애절함과 떨림이 묘한 콧소리를 통해 덧붙여지고, 때로는 고음 샤우팅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두성과 비음 등 전통 창법이 금기시하는 테크닉을 적극 구사했고, 그 결과 그녀는 가장 반(反)트로트적인 가수였다(「나의 이력서 신중현: <14> 김추자와의 결별」, 『한국일보』 2003년 3월 18일)”는 신중현의 자설은 이를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이상과 같은 목소리의 결과 창법, 춤과 외모 등 모든 면에서 당시 여성 보컬리스트에게 기대되었던 고정적인 이미지들과는 다른 파격을 선사했다.

이 여가수들의 직설적인 절규는 솔․사이키 가수들에게 그 절정을 이룬다. 펄 시스터즈의 육탄적인(?) 절규 「임아」. 그러나 참으로 이 직설적인 절규가 그 창법에까지 적중한 경우는 솔․싱거 김추자. 아예 목소리를 떨며 슬픔을 지어내는 바이브레이션 같은 것을 거의 안 쓰고 내장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그대로 쏟아놓는 시원한 창법. 대표곡 「임은 먼 곳에」서는 그 가사까지 「못 산다」 「마음주고 눈물주고」 등 내장을 그대로 드러내놓는 어귀로 이어져 피곤한 도시인의 가슴에 한가닥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가요계의 유행병: 퇴폐적인 가사와 창법은?」 『주간여성』, 1971년 4월 21일

카리스마 넘치는 김추자의 보컬에 옷을 입힌 스타일의 이름은 소울․사이키델릭이었다(소울 사이키델릭에 대한 것은 마찬가지로 펄 시스터즈를 참고하라). 그런데 여기에는 의식적인 ‘전통음악적’ 접목이 눈에 띈다. 이것은 다시 말해 ‘한국적 음악’에 대한 신중현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이것은 음계의 사용 같은 데서도 드러나지만 무엇보다도 김추자의 창법으로부터 기인하는 경향이 크다. 예를 들어 <늦기 전에>에서 중반부에 타령이나 민요, 판소리 창에서 연원하는 창법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김추자는 이후 민요와 관련된 곡들을 간간히 음반에 수록하기도 했는데 그러나 이런 곡들은 오히려 한국적인 어법의 노래와 서양의 소울 스타일의 노래 사이에 존재하던 아슬아슬한 긴장의 매력을 깨뜨린 것으로 들린다).

데뷔곡 「늦기 전에」서는 프레이징의 반복이라는 사이키의 정형(定型) 외에도, 우리 민요에 있어서의 창법적 바이브레이션을 도입, 현대적 가요와 고전의 융합을 꾀하고 있다. (「신중현 리싸이틀서 선보인 신인들: 사이키의 김추자... 황소가수 소윤석」, 『주간경향』, 1969년 11월 15일)

나는 김추자라는 보석을 통해 한국적 록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늦기 전에’를 한번 보자. 경쾌한 소울을 구사해 오던 김추자가 뒷 부분에서는 갑자기 목소리 톤을 바꿔 우리 타령조로 나간 사실을 일부 팬은 눈치챘을 것이다. 그게 국내 대중 음악계에서 처음 도입해 본 판소리 창법이다. 하여튼 그 곡은 71년 1월 노래책 ‘대중가요 제 49집’에서 70년도 가요 추천 1위로 선정됐다.(「나의 이력서 신중현: <13> 김추자, 대타에서 스타로」, 『한국일보』 2003년 3월 18일)

김추자 컴백리싸이틀(1972)와
78 리싸이틀 실황녹음(1979) 음반

그런데 이런 여러 가능성을 타진하는 ‘신중현 사운드’는 김추자의 음반에서는 대중적인 선에 한정된 것이었다. 보다 대중화된 어법과 사운드가 김추자 같은 대형 스타에게 적용되었다면 본격적인 실험은 가령 데뷔 레코딩의 경우 김추자가 아닌 김선의 <떠나야 할 그 사람>에서였다고나 할까. 한 가지 비교를 더 하자면 펄 시스터즈의 데뷔음반이 전체적으로 통일시킨 스타일을 주조한 반면 김추자의 경우는 곡 하나 하나에 초점을 맞춘 듯 들린다.

이 외에 김추자의 데뷔 레코딩에서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같은 건전가요/군가 스타일이라는 의외의 곡에서는 행진곡 리듬에 중반부에 전조가 이루어지거나, 키보드의 사이키델릭한 연주가 덧붙여지는 식으로 나름의 새로움이 첨부되었고, 이 가운데 보컬은 경쾌한 분위기를 전달한다. 독특한 스케일(증 4도음을 구사하는 믹소리디언 스케일)을 이용한 <나무잎이 떨어져서>는 이국적이고도 기묘한 분위기를 들려준다. 그 밖에 《이 밤이 가면/거짓말이야》(1972)에 실린 그녀의 대표곡 중 하나인 <거짓말이야> 같은 곡은 <거짓말> 혹은 <거짓말이야>라는 단어의 단순한 반복이 묘한 변주적 확장을 일으키는, 반복과 변주의 화두를 잘 융화해낸 경우라 할 것이다.

<님은 먼 곳에> 히트 이후 <거짓말이야>, <소문 났네> 등 일련의 김추자표 히트곡들을 발표했는데 이 무렵부터 신중현과는 멀어졌다. 신중현은 김추자의 리사이틀에 게스트 연주자로 종종 참여하였지만 음반으로는 《후회/석양》(1973)이 신중현이 곡을 준 마지막으로 기록되었다. 그 이후 김추자는 김희갑 작곡의 <왜 아니올까>, <그럴 수가 있나요>나 이봉조 작곡의 <무인도>를 비롯해, 번안곡인 <꿈속의 나오미>, <마음은 집시> 등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러한 김추자의 후기 경향은 펄 시스터즈의 경우와 비슷하다. 다시 말해 초반의 ‘신중현 사운드‘로부터 돌파하지 못한 듯한 인상 때문이다.

《이밤이 가면/거짓말이야》 유니버어살, KLS-62, 1972
《왜 아니올까/그럴 수가 있나요(김희갑 작곡집)》 유니버어살, KLS-55, 1973
《후회/석양(신중현 작곡집)》 유니버어살 KLS-78, 1973(왼쪽부터)

연예계의 거물이 된후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김추자는 많은 스캔들과 사건들에 연루되었다.  1969년 후반 데뷔 이후 많은 사건들을 남겼던 그녀는 1975년 경 ‘대마초 파동’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 공연과 재기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영광은 과거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뜻은 아니다. 김추자를 자신의 ‘요람’으로 지목하는 많은 이들의 증언과 고백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불운했던 정치사 속에서 당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유일한 해방구로 군림했다거나, 음악 깨나 듣던 혹은 ‘의식 있는’ 젊은이의 청취까지도 은밀하게 점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아니, 나아가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모토까지 등장할 정도로 남녀노소를 막론한 만인의 가수였다는 전설은 말할 필요조차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 이성욱의 『쇼쇼쇼: 김추자, 선데이 서울 게다가 긴급조치』라는 책에서 김추자에 대한 필자의 따뜻한 회고를 읽을 수 있다. <마녀 김추자>(감독 이현승)라는 영화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니 김추자에 대한 신화화는 끝나지 않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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